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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그들을 ‘갓’이라 부르는가

이원우의 컬처쇼크


예쁘고 잘생긴 외모와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가수 활동을 하는 이들을 흔히 아이돌(Idol)이라고 부른다. 아이돌은 우상(偶像)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인간에게, 그것도 보통 나이가 아주 어린 이들에게 우상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 아이돌을 추종하는 팬들은 팀별로 마치 올림픽처럼 팬덤을 구성해 ‘멜론 실시간 차트’라는 전쟁에 참전한다. 전쟁 중인 이들의 표정은 매우 진지하다. 아이돌의 승리가 곧 그들 자신의 승리이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공인인증서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돌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간 사람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우상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神) 취급을 해준다. 요즘 들어 사람 이름 앞에 ‘갓’을 붙이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을 것이다. 갓재석(유재석), 갓우성(정우성), 갓석희(손석희) 뭐 그런 식이다. 여기서 갓은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쓰지 말라’고 할 때의 그 ‘갓’이 아니다. 신(God)을 의미하는 ‘갓’이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도달하기 힘들어 보이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저 너머로까지 상승한 인류를 한국인들은 ‘갓○○’이라고 부른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 조어법에는 일말의 시대정신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권위의 종말을 외치는 시대정신

첫째, 신(神)의 권위 상실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진짜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을 보면 진심 어린 동정을 하는 게 현재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다. 시집 장가 잘 가고 싶으면 종교는 “없다”고 말하는 게 간편한 세상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보다는 내 눈앞에서 혹은 TV나 컴퓨터 모니터에서 권능을 발산하는 존재가 훨씬 더 전지전능해 보인다. 신이 하는 일이 뭐가 있나? 인간의 고통에 침묵할 뿐이다. 그러나 ‘갓○○’들은 인간의 환호에 눈을 맞춰주고 손을 흔들어준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을 때 그가 선언한 것은 모든 권위의 종말이었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이 바로 그렇다. 누군가 진지한 표정으로 원칙과 소신을 주장하면 그 사람은 너무도 쉽게 ‘‘10선비’, ‘진지충(蟲)’, ‘프로불편러’ 같은 폭언을 감수해야 한다.

모두가 모든 것에 대해 냉소를 날리고 비웃으면서도, 내심은 상처를 받아 자살을 고민하는 게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제 신의 자리는 인간의 것이 됐다.

역동성을 상실한 연예계

‘갓○○’ 현상이 표상하는 두 번째 포인트는 역동성의 상실이다. ‘갓’의 지위로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워낙 적어진 세상이다 보니 이미 올라간 사람들의 권위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를 봤는데, 무려 16년 전 작품이지만 이 영화의 주연인 ‘갓경구(설경구)’와 ‘갓도연(전도연)’은 여전히 충무로 최고 배우라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영화계뿐인가? 15년 전 톱이었던 유재석은 지금도 톱이다. 15년 전 최고의 인기 가수들을 배출했던 SM, YG, JYP는 여전히 ‘3대 기획사’로 손꼽힌다. 이들은 모두 한국 대중문화의 중흥기였던 1990년대에 사업을 시작해 자리를 잡았다.

1990년대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콘크리트 주물이 굳어 가던 시기였다. 사회가 지금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기 전에 이름을 새긴 사람들만이 역사에 기록될 특권을 얻어 ‘갓’의 레벨로 진화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들 자신의 탄탄한 실력이 있었음은 물론이지만, 시대가 그들을 위해 최고의 자리를 공백으로 남겨뒀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는 의미다.

이 선배들이 구축해 놓은 공고한 기득권의 세계에 후배들이 균열을 내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후배들에게는 돈도, 힘도,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45세를 청년으로 부르는 비극

대한민국 사회의 역동성이 사라지면서 진행된 것은 명성의 양극화다. 어떤 사람들은 불과 40~50대의 나이에 신(God)의 영역으로 진입하지만, 그 단계로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30대 중반이 되도록 청년(靑年)이라는 미성숙의 꼬리표를 강제로 부여받는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설경구는 33세 노총각으로 설정돼 있다. 남자 나이가 서른셋쯤 됐으면 응당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제 몫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게 그 영화에 깔린 고정관념이다.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폐해건 뭐건 그땐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2017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도 33세 남성을 ‘노총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45세까지를 청년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2030은 육체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애’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갓○○’이라는 조어법을 만든 세대가 바로 그 2030들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2030들이 삶의 환희도, 고통도, 시행착오조차도 전부 선배들에게 뺏겨 버린 채 딱딱한 콘크리트 속에서 박제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처사일까. 누군가 ‘개천에서 용 난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종교를 가진 사람만큼이나 비웃음을 당하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현재가 아무리 힘들어도 미래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으면 인간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에는 바로 그 희망이 결여돼 있다. 꿈을 잃어버린 청춘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가진 선배들을 신으로 지칭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그 꿈의 세계를 마음껏 동경하고, 또 거기까지 도달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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