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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무서운 아이들

3월부터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끝났다.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추억거리와 경험담을 매 쉬는 시간마다 와서 떠들었다. 듣고 있노라면 마냥 미소가 지어지는 이야기들을.... 그런데 방학이 싫은 아이들이 있다. ‘가정폭력’이 두려운 아이들이다. 이들에게 학교는 ‘유일하게 제대로 된 끼니’를 먹을 수 있는 곳이고, ‘폭력’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 곳이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보호막이 없어진다.

“방학이 너무 싫어요”
순희(가명)을 만난 것은 방학을 하루 앞둔 방과후였다. 그냥 쉬러 왔다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사이사이 순희와 눈이 마주쳤다. 분명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싶어 다른 아이들을 서둘러 돌려보내고, 개인상담실에서 마주 앉았다.

“힘든 일 있니? 말할 수 있는 만큼만 이야기해보렴.” 순희(가명)는 몇 번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방학이 너무 싫어요.” 순희는 초등학생 때부터 방학이 싫었다. 엄마 대신 동생을 돌봐야 했고, 집안일도 해야 했다. 아빠가 일을 안 나가시는 날에는 온갖 심부름은 물론, 술상까지 봐 드려야 했다. 무엇보다도 아빠의 술주정을 견디는 것이 고역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나 친구들이랑 밖으로 나돌면서 놀았다. 아빠가 변한 건 그때부터였다. 집안일과 동생들을 돌보지 않고 친구와 놀러만 다니는 순희를 아버지는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기가 맞을 짓을 했다고 생각해서 견뎠다. 하지만 점점 강도가 심해져 갔다. 어떤 날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냥 때렸다. 엄마가 말리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순희는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맞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는 안 맞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방과후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아빠와 부딪힐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학을 앞두고 야간자율학습이 없던 어제, 아빠에게 맞았다. “술 떨어졌다고 술을 가지고 오라는 거예요. 베란다를 보니까 남은 술이 없더라고요. ‘술 없어’라고 말했더니 욕을 하면서 ‘사오면 될 것이지 말대꾸한다’고 머리를 때리시는 거예요. ‘미성년자에게는 술 안 팔아. 못 사와’라고 했더니 술병을 집어던지면서 때리고, 깨진 유리에 찔리고….” 여기저기 상처가 선명했다. 순희는 여름방학이 되면 아빠와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하는 날이 많을 텐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면서 울먹였다.

의무화된 아동폭력 신고가 망설여지는 이유
교사는 아동폭력 신고 의무자이다. 학생이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즉시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아주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경우, 대부분의 부모는 경찰 조사 후 귀가 조치된다. 다시 한 집에서 얼굴을 맞대고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더 큰 폭력에 시달리기도 하고, ‘부모를 신고한 못된 자식’이 되어 가혹한 냉대를 견뎌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폭력과 냉대의 정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도 많다.

‘신고’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가 더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부모의 폭력 때문에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부모가 찾아와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면 돌려줄 수밖에 없다.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쉼터’ 관계자도 뻔히 집에 가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난감해했고, 경찰 역시 수감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 경우, 법적인 강제력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결국 부모와 자식이라는 ‘천륜’은 끊을 수 없고,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은 ‘집’이며, 모든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고스란히 ‘아이’ 몫이다.

그래서 의무화된 ‘신고’가 망설여질 때가 많다. 머릿속으로는 ‘행정 절차상 신고해야 한다’고 다그치지만, 이후 그 아이가 견뎌야 할 상황을 알기에 쉽게 결정 내리기가 어렵다. 불안해하는 나를 향해 학교 전담 경찰관은 말했다. “경찰이라고 무작정 집으로 쳐들어가지는 않아요. 학생과 상담을 해보고, 집에 가서 상황도 파악해보고 하면서 진행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또 우리가 계속해서 주변을 돌기 때문에 자녀에게 함부로 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아무 걱정말고 무조건 신고하셔야 해요”라고. 그래서 언제나 결론은 ‘신고’이다. 학생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떠나 ‘쉼터’로 보내진 아이
순희에게 ‘네가 보호받기 위해서는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순희는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불안해했다. 사실 순희의 가정폭력은 정도가 심했다. 정서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자세한 내용을 지면에 실을 수 없어 생략했지만 어떻게 견디고 살았나 싶을 정도였다. 경찰에 신고하고,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시급했다. 고민 끝에 순희가 방학 동안이라도 지낼 수 있는 ‘청소년 쉼터’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쉼터에서 한 달 이상 머무르기 위해서는 학부모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혹시 어머니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연락을 취했다. 어렵사리 연결된 어머니와의 통화는 조금 뜻밖이었다. 상황 설명을 하자마자 어머니의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집은 아무 문제 없어요. 아이 말만 듣고 이러시면 곤란하죠”라는. 그러면서 “집에 들어오면 우리끼리 이야기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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