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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의 사회. 오호! 통재라.

우리는 사람의 겉모습이나 배경으로 특정 사람에 대해 그릇된 인식과 편견을 갖는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람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본질을 직관해야 한다. 즉, 있는 그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7. 철학(哲學)은 처락(處樂)이다-인문학기행-⑫ 노장자 사상


노자 : 자연(自然)을 잃어버린 인간, 괴물이 되다
노자는 사회문제의 흔한 원인을 사물의 겉모습에 이끌려서 잘못된 인식과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인위적인 욕망 즉, 위(爲)로 인해서 ‘순수한 자연의 덕’이 훼손되고 있으며, 혼돈스럽고 어지러운 세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자의 자연(自然)은 ‘自(스스로) + 然(그러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저절로 그러함’에 어긋나면 그 본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물의 본성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인위적인 행위를 가했을 때 물은 우리에게 반격을 가한다. 이처럼 인간도 자연성을 해치게 되면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자신의 자연(自然)을 어떻게 해서든 바꾸어 보려는 인위적인 행위(爲)를 자행하지 말아야(無)한다. 이것이 노자 강조하는 이상적 삶인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자신의 ‘스스로 그러함’에 인위적인 가식과 위선적 행위를 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본래의 자기 모습대로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자기 모습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 세상은 병들게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 천지가 힐링(healing)의 사회가 되었다. 무위자연의 힘만이 심신에 지친 내 마음을 고쳐줄 수 있다.


장자 : 난 너와 다르다(It's different). 엄친아ㆍ엄친딸을 거부한다.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는 비교를 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다르게 태어난 학과 오리는 아무리 ‘학의 다리 일부를 잘라서 오리 다리에 붙인다’고 서로 같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자에게 있어 도(道)란 이것과 저것의 절대 대립이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도(道)의 경지에서 보면 ‘너와 나’의 차이가 없다. 나와 너의 대립(쟁:諍)을 해소(화:和)하는 것, 이것이 바로 ‘만물(物)을 가지런히(齊) 하다’는 장자의 ‘제물(齊物)’사상이다. 이러한 장자의 도(道)는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적 사유이며, 전체론(Holistic)적 사유이며 동시에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과 통한다.


‘너’와 ‘나’의 다름은 필연적이다. ‘다름’에 대한 차별은 없어져야하지만, ‘다름’에 대한 인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개성이 다르다. 서로 다른 개성의 조화로움을 통해 하나가 되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상세계의 분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세상의 한 면만을 바라보고, 자기 것이 절대 보편타당하다고 주장하는 이기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Platon)이 동굴의 비유에서 주장했던 것과 같이 우리는 자신들만의 동굴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느 것이 더 옳다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자연성을 파괴하는 순간 인간은 혼돈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혼돈을 극복하고 이상적 경지에 도달하는 좌망(坐忘), 심제(心制), 물아일체(物我一體)가 필요하다. 좌망(坐忘)과 심제(心制)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잊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너와 나’가 하나가 되는(物我一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일체의 비교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상황을 마음속에서 깨끗이 비워 버려라. 그러면 마음의 동요가 없을 것이다. 서로를 비교함으로서 서로에게서 상처를 받는 동안 마음의 고요상태는 깨지게 되어 병이 든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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