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 두 벗과 숲길을 걷다

2020.06.11 07:56:15

자연지능

주말이면 가까운 숲으로 갑니다. 해가 산허리를 넘어서면 배낭에 물통과 빵 한 조각을 넣고 복실이 간식도 몇 개 챙겨 집을 나섭니다. 산자락에 사는 덕에 금방 무학산 완월공원을 지나 산불초소에 도착합니다.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어 넣고 맨발로 천천히 산을 오릅니다. 비가 내려 찐득하고 붉은 흙이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올라옵니다. 등산로를 천천히 걸으며 온몸으로 산의 기운을 느낍니다. 푸른 차나무와 꽝꽝나무, 산벚꽃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가 반깁니다. 소나무의 넘실거리는 붉은 줄기가 용비늘처럼 같습니다. 숲 친구들과 웃으며 눈인사를 나눕니다.

 

숲은 하얀 때죽나무꽃으로 장식하고 저를 반깁니다. 별처럼 하얗게 빛나는 그네들을 만나는 산길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하얗게 빛나는 별 모양의 꽃들이 은하수처럼 흩뿌려져 있습니다. 밟고 지나기에 너무 아깝습니다. 우수수 밤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면 저 모양일까요? 그런데 무심한 사람들이 밑창이 두꺼운 등산화로 으깨어 밟습니다. 하얀 꽃송이들이 안타까워 자리를 뜨지 못하고 혼자 동동거립니다.^^

이 좋은 시간을 함께하는 벗이 둘 있습니다. 첫째 벗은 아파트에서 지내다 주말만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 집‘복실이’입니다. 몇 년 전 어느 낚시점에 버려진 녀석을 남편이 데려왔습니다. 또 한 명의 벗은 무학산 지킴이 ‘백구’입니다. 소문으로는 산 근처에 살던 주인이 이사면서 두고 갔다는 진돗개 혼종입니다. 이 녀석은 매일 산불초소 옆에 앉아 있습니다. 순둥순둥하고 착한 백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매일 물과 음식을 가져다줍니다.

 

산 입구에 다다르면 우리 집 복실이의 소리를 듣고 백구가 번개처럼 다가와 인사하며 놉니다. 그러고는 약수터까지 오르는 길에 벗이 되어 줍니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복실이와 다르게 험한 길에는 넘어질세라 제 옆에서 기다리고 가끔은 천천히 함께 발을 맞추어 갑니다. 얼마나 점잖고 멋진지 저는‘백구파’가 되어버렸습니다.

 

천천히 살아있는 대지의 기운을 느끼며 때죽나무꽃이 종소리를 내고 별처럼 뿌려진 길로 걸으면 제 옆에서 두 벗은 점잖게 혹은 간살맞게 발을 맞춥니다.

 

대한민국 맨발학교 교장 권택환 교수는 자연에서 길러지는 지능을 자연 지능이라고 말합니다. 컴퓨터나 교실 환경 등 제한되고 밀폐된 환경을 떠나 자연을 접해봄으로써, 스스로 길러지는 사색의 힘입니다. 자연지능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고 우리가 자연을 일부임을 느끼고 회복하는 일이라 말합니다. 그 말에 동의합니다.

 

주말이 가까워졌습니다. 산언저리에 앉아 기다릴 벗과 매일매일 제 등산배낭만 바라보는 또 한 명의 벗과 산을 오를 것입니다. 제 맨발에 숲과 땅과 바람의 영혼이 깃드는 시간입니다.

 

『자연지능』 권택한 지음, 북크크, 2020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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