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 중 수석교사 8년을 회고한다

2020.03.30 10:02:11

다시 교육적 열정에 물들다

교단에 발을 디딘 지 25년이 넘는 시점이었다. 그때 나이도 50이 넘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중견 교사라고 치켜세운다. 명시적 지위는 없지만, 제법 경력이 있는 선생님들을 이렇게 지칭한다. 나 역시 나이가 지긋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부른 듯하다.

 

중견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제법 무게감이 실린다. 적어도 중견 교사는 젊은 교사보다 전문성이 뛰어나고, 그들보다 나은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업 등에서 보이는 전문성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배어 있어야 하고, 인품도 남다른 면이 있기를 바란다. 중견 교사는 젊은 교사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있어야 한다는 마음의 잣대도 두고 있다. 그야말로 실력과 멋이 함께 있으면 좋다.

 

그러나 현실은 어디 그런가. 멋은커녕 손가락질을 받을 때가 많다. 사람들이 모두 나이를 넘지 못하듯, 중견 교사도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습에서 동료들과 선배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흘러버린 세월 앞에서는 무뎌진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열정도 식어버린 모습이 역력하다.

 

이 시점(2011년)에 수석교사제가 법제화됐다. 수석교사제는 교육계에서 1981년부터 30여 년간 간절하게 원하던 제돈데 드디어 법의 테두리에 들어온 것이다. ‘초·중등교육법’에 수석교사 직급 구분을 명시했다.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현행 1원화된 교원 승진체제를 교수 경로와 행정 관리 경로로 2원화 체제로 개편한 것이라고 홍보했다. 교장, 교감의 관리직 승진 구조에서 교사에서 수석교사로 직급을 옮기는 교수직이 신설된 것이다.

 

수석교사는 본인의 수업을 하면서, 동료 선생님들의 교수·학습 지도 지원을 맡도록 했다. 이 전환은 교사의 수업 전문성을 신장시키는 중요한 발상이다. 교사 본연의 직무인 수업에 가치를 둔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었다. 자리보다 일로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만나고 싶었다. 지혜와 덕망으로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수석교사 시험에 응시하고 발령을 받았다.

 

의욕을 갖고 수석교사의 임무를 시작했지만 어려움을 먼저 만났다. 일반계 고등학교는 학사 일정이 여유 없이 돌아간다. 선생님들도 수업과 평가 등 정신이 없다. 수업에 학생 지도, 업무 처리까지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가버린다. 교육 활동에 도움을 받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 그리고 학교는 오랫동안 교수·학습 지도 지원 경험이 없다. 장학지도라 해서 수업을 평가받는 관례가 있어 수업 컨설팅도 같은 성격처럼 느껴져 내키지 않는 분위기다. 이러니 수석교사는 교내에서 동료 교사를 지원하는 구조에 끼어들지 못한다.

 

이런 문제는 수석교사가 업무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생긴다. 수석교사는 동료 교사에게 교수 학습을 지원하고 컨설팅 등을 하는 직무가 있지만, 그 직무가 명시적이지 않다. 그 임무 또한 선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경우가 많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수업의 짐을 나누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더 나은 수업을 위해 새로운 수업 기술에 갈증을 느끼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때 교육학에 있는 수업 기술을 안내하지 않았다. 그 선생님이 힘들어하는 것은 수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경력이 낮은 선생님에게 교실은 힘든 공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사랑스럽지만, 학습에서 멀리 가버린 아이들을 혼자 감당하기는 버겁기도 했다. 여기에서 외롭게 흔들리다 온 선생님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수업 기법이 아니라 위로를 주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내면에 자신감을 찾아주는 것이었다.

 

사실 수석교사의 길에 망설이다가 지원했다. 이유는 선생님들을 지원할 수 있는 자격과 역량을 갖추었는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조건이나 환경을 모두 갖추고 시작하는 것은 거의 없다. 목적을 갖고 떠나는 여행보다 정처 없이 떠나는 여행에서 많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수석교사라는 길에서 새로운 것을 배웠다. 무턱대고 후배 선생님들의 수업을 분석하고 처방을 내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감동적인 컨설팅은 힘듦을 알아채고, 공감하고 답을 함께 찾아가는 것에 있었다.

 

수석교사로 근무한 8년은 평생 교직 생활 중에 가장 치열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지위와 역할이 내부 세계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게 할까?’, ‘아이들을 배움의 길로 이끌 때 나는 어떻게 함께 할까?’, ‘나도 선생님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은데,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대화를 많이 했다.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줬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배움으로 들어서게 하는 대화를 하면서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의 대화도 많아졌다. 수업의 문제도 스스로 발견하게 됐다. 문제를 발견하면서 나만의 수업 기술을 탐색할 수 있었다. 책도 대화의 매개체였다. 대학 다닐 때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 삶이 수업을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매 순간 성찰하면서 성장하는 기쁨을 누렸다.

 

8년 동안 경기도내에서 여러 곳에서 강의를 했다. 단위 학교, 신규 교사, 1급 정교사, 복직 예정자, 사립 특별 채용 대상자, 교육청 직무 연수 등의 초청을 받았다. 교육과정 재구성, 수업 개선, 그리고 평가 관련 등 교육 실무분야에서 선생님들을 만났다. 맞춤형 교육과정 재구성 실천 내용을 소개하고 학생 활동 중심 수업 중에 성공한 경험은 물론 실패한 경험까지 공유했다. 강의는 교육학에 있는 수업 관련 매뉴얼을 소개하거나 우수 사례를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연수는 선생님들의 전문성을 위축시킨다. 수업 매뉴얼은 이미 선생님들도 아는 것이고 설사 그것을 모른다고 해도 교실에서 쓸데없는 지식이 되기도 한다. 모범 사례도 그것이 힘으로 작용하면 선생님들의 창의성이 약해진다. 그래서 내가 수업과 평가 등 추진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을 나눴다. 그 과정부터 결과까지 실패했던 것까지 안내했다. 물론 강의 도중에 미래 교육의 방향 변화에서 학생들의 내재적 가능성을 일깨우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언급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실천 사례를 보여주기 위한 전제였다.

 

교사 연수에 대한 철학이 있었다. 교사는 이미 전문가다. 그들이 충분히 교육 전문가이고 현장 실천가다. 따라서 강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의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자 했다. 그들의 마음의 텃밭에 씨를 뿌리고 그 열매를 스스로 맺도록 하는 강의에 주목했다. 선생님들이 스스로 내면을 탐구하고 자신의 길을 찾도록 했다. 내면으로부터 가르칠 수 있는 길을 찾을 때 아이들 앞에서 당당하게 서게 된다. 결국, 내가 한 일은 선생님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교육적 열정에 불을 지피는 역할이었다. 선생님들 앞에서 강의를 했지만, 오히려 배운 것이 더 많다. 선생님들의 열정을 만나면서 한때 품었던 내 마음속의 강렬한 희망이 살아났다. 겸손을 배웠고, 보람과 긍지를 느꼈다.

 

그런데도 수석교사제는 현장에 안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교육감은 개인 의견을 내세워 수석교사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는 개인의 취향으로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수석교사제는 법률에 의해서 만든 교원 자격이다. 법으로 명시한 수석교사의 취지와 역할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을 위해 수석교사의 정원과 선발을 확대하고, 학교의 문화를 수업을 중시하는 것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혁신적인 교육방법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길목에서 선생님들이 두려워하고 움츠러들고 있다. 그렇다고 수석교사가 선구자처럼 앞장서서 그것을 해결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선생님들과 함께 가면서 힘들 때는 같이 쉬고, 또 가야 할 때는 격려하며 힘을 내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다.

 

수석교사제는 근대교육 이후 우리 학교의 교원 구조에서 가장 발전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머지않아 우리나라 교육계에 발전의 동력이 될 것을 확신한다. 교원 조직 체계의 변화로 미래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의 핵심 리더 역할이 기대된다. 막중한 사명감을 부여하고, 비전을 함께 그려야 한다.

윤재열 수필가 tyoon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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