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울철에도 내복 안 입어요”

2019.12.13 16:30:12

직물 가공법 발달로 따뜻한 겨울 보내

우리 집 안방 옷장 가운데 서랍을 열어본다. 내복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숫자를 세어본다. 하의가 12벌, 상의가 4벌이다. 이것은 겨울내복은 물론 봄과 가을 내복까지 합한 것이다. 하의가 많은 이유는 아들이 입던 네 벌을 합한 것이다. 이 옷장 작년부터 보관용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내복이 이처럼 여러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내의 몇 년간 입으면 보온성이 떨어진다. 그러면 과거 입었던 것을 버리고 새것을 구입해야 하는데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보관 중인 옷도 하의 허리 고무줄이 늘어지거나 상의 목부분이 늘어져 내의 구실을 못한다. 아내는 이것 모두 재활용품으로 내 놓으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버리지 못한다. 내 나이 지금 60대 중반, 혹시 아는가? 70대가 되면 체력이 약해져 내복을 입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혈기 왕성한 20대부터 내복을 즐겨 입던 나. 봄과 가을에도 얇은 내복을 입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 추운 겨울에도 내복을 입지 않는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인삼 보약을 먹어 내성을 강화하거나 헬스장을 다녀 체력을 길렀을까? 아니다. 작년 이 맘 때 저렴한 가격의 기모 바지를 발견하고 세 벌 구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기모? 일본어인 줄 알았는데 기모(起毛)는 한자어다. 글자 그대로 하면 옷감의 털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즉 기모는 모직물이나 면직물의 표면을 긁어서 보풀이 일으키는 직물 가공법이다. 이것은 금속성의 바늘 등을 이용하여 직물의 표면을 마찰하여 보풀이 일어나게 하는 공정이다. 깃털세우기라고도 한다.

 

기모는 직물의 감촉을 부드럽게 만들고, 직물의 두께를 부풀리는 효과가 있으며, 보온력을 높이기 위한 가공법으로 많이 사용한다. 침구류와 더불어 겨울철 옷에 많이 사용한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모포는 기모를 적용한 대표적인 예다. 직물의 가공면에 따라 양면기모와 편면기모가 있다. 현재 기모 방법으로는 자연물을 이용하는 대신 주로 기계를 이용하여 작업을 한다.

 

내가 구입한 기모 바지를 살펴보니 일반모직보다 조금 두텁다. 바깥쪽은 일반바지와 같지만 안쪽은 부드러운 담요처럼 되어 있다. 입어 보니 보온성이 높아 따뜻하다. 구태어 내복까지 입을 필요가 없다. 제품을 보니 유명 상표는 아닌 중소기업 상표다. 재질은 폴리에스터 95%, 폴리우레탄 5%다. 바지통도 좁아 젊은이 기분이 난다. 작년 겨울 내복 없이 기모바지 세 벌로 겨울을 났다.

 

기모바지 가격은 저렴하다. 단돈 10,000원이다. 실제 제품 6만원에서 10만원 정도 되지만 세일 가격인 것이다. 아마도 정식 매장에서 팔고 남은 재고를 파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떤가? 저렴한 가격에 내가 원하는 옷이라면 불황시대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기업의 형편이 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중소기업 사장이라면 재료비, 인건비 합해 이 가격에 도저히 팔 수 없는 것이다.

 

할인구입에 맛을 들였나 아니면 할인중독이 되었을까? 올 겨울 다시 기모 바지를 샀다. 기존 바지 하나가 통이 넓어 어르신 분위기가 났기 때문이다. 카키색과 곤색 두벌을 샀는데 마음에 든다. 대형 마트에서 구입했는데 이번엔 13,000원이다. 대신 바지 길이가 맞아 수선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작년 구입한 세 벌과 올해 구입한 두 벌 모두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제조한 것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OEM 방식을 택한 것이다. 요즘 웬만한 의상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만나기 힘들다. 한국제품만을 고집할 수 없다. 생산자는 생산단가를 줄이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니 상호이득이다.

 

기모바지를 입으며 참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을 느낀다. 60대 중반의 강한 체력도 아닌데 한겨울에도 내복을 안 입는다. 직물 가공법의 개발로 이런 혜택을 보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모하는 방법으로는 솔잎이나 침, 엉컹퀴 씨 등을 이용하여 직물의 표면을 긁는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인간의 지혜 발달과 신기술 개발은 계속 이어진다. 내게 일거리가 생겼다.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옷장의 내복, 버릴까 그대로 보관할까?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yyg99@hanmail.net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 광고 문의: 042-824-9139(FAX : 042-824-9140 / E-mail: sigmund@tobeunicorn.kr)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여난실 | 편집인 : 여난실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