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창가에서] 시골학교일수록 원어민 교사가 필요하다

2019.10.10 14:03:37

마산초등학교는 6학급 규모의 전교생 42명 소규모 학교다. 이 아이들의 가정을 세어보면 총 열 가구는 넘을까. 먼 거리에도 자녀들을 보낼 만큼 학교에 애착을 가진 분들이 형제자매들을 통째로 보내는 통에 학교가 마치 형제들로 이루어진 대가족 같다. 그 중 한 가족이 이사 간다 싶으면 학생 수가 크게 줄어 복식학급을 꾸리거나 폐교가 될까봐 학교가 뒤집어질 정도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

 

그런 작은 학교지만 마산초에는 원어민 강사가 있다. 학교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돌아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많지만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순박한 시골 아이들은 원어민 선생님을 따라 낯선 영어 발음을 흉내 내고 저 멀리 있는 나라의 신기한 풍속과 역사에 대해 듣는다. 옆의 영어전담 선생님은 원어민 선생님의 말을 아이들이 알아듣기 좋게 해석해준다.

 

마산초 어학실은 전담 선생님과 원어민 선생님이 함께 수업을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문화가 교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담 선생님은 경력이 많은 원어민 선생님으로부터 교수법이나 게임을 배우고 원어민 선생님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서로 배우는 활발한 대화 속에 교육철학을 공유하기도 한다.

 

원어민 강사는 주한미군 출신으로 한국 역사와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전역 후 고향에서 학부를 마치고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 대학에서 동아시아에 대해 공부한 다음 한국에 정착했다.

 

고교를 졸업하자 바로 입대해 이라크 전쟁을 겪은 그에게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는 평화로운 고향 위스콘신에서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를 향해 자원입대했고, 역사를 좋아했지만 많은 전투를 거치고 여러 나라를 여행한 후에야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배운 것을 학생들이 배울 수 있기를 원했고, 학생들이 강하게 성장하기를 원했다. 먼 이방에서 온 선생님의 이야기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고, 학생들의 예의 없는 행동이나 일탈을 대충 넘어가곤 했던 본인도 엄격한 원어민 선생님의 교육 철학에 큰 감화를 받기도 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어린 나이 때부터 해외에서 자라고 조기 스펙을 쌓으며 경쟁한다는데 우리 학교 아이들은 정규 교육과정을 따라가기에도 버거울 때가 있다. 종종 그럴 때마다 많은 과제를 부여하거나 많이 가르치고 싶은 욕심에 속상해 할 때, 원어민 선생님은 한 번에 모든 것을 배울 수 없다며 위로하기도 했다.

 

이미 충분히 많은 해외 경험의 혜택을 누리는 아이들에게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 하는 기초 영어 시간은 대수로울 것이 없겠지만 마산초와 같은 작은 시골 학교의 아이들에게 좋은 원어민 선생님은 더 넓은 세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일지도 모른다. 해외가 아니라 국내 프랜차이즈도 몇 번 못 가 본 아이들에게 영어는 자기들과 관계없는 남의 나라 말일 뿐이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시에서 원어민 사업을 축소한다고 해서 시내 원어민 강사들은 전부 비상이 걸렸다. 갑자기 일자리를 모두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원어민 선생님도 급하게 전화를 걸어 계속 우리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냐고 물어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는데 반드시 필요한 교육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소중한 기회 빼앗아선 안 돼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때론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작은 마을에 덩그러니 놓인 학교에서 충분히 많은 보조와 지원을 받지 않는 아이들에겐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있다. 나는 그 중에 원어민 선생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사교육을 통하지 않고 실제 원어민이 쓰는 영어 음운과 표현들을 익히며 실제적인 의사소통을 함과 동시에 더 넓은 세계를 살아갈 시민으로 키우게 하는 원어민 선생님을, 우리가 쉽게 필요 없다 단정 지어 아이들로부터 빼앗아서는 안 되지 않을까.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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