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창가에서] 미국 교사가 되어보니…

2019.10.02 19:18:51

언어학적으로 만 7세 이상이 되어 제2외국어를 습득한 사람은 모국어의 악센트를 피하기가 힘듭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교직 생활을 하다 만 26세에 미국으로 건너온 저는 언제나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어에 존재하지 않는 r과 l, f와 v, g와 z의 차이는 80년대에 초·중학교를 다닌 저로서는 굉장한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처음 미국 교사가 되기 위해 인터뷰를 할 때도, 교사 연수 강사로 미국 교사들 앞에 설 때도 한국식 발음으로 인해 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라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영어 울렁증 극복한 수업방식
학기 초에는 늘 같은 고민이 저를 따라다닙니다. 특히 학부모와의 첫 만남인 ‘back to school night’이나 ‘open house’ 날이 되면 아침부터 스트레스로 입이 탈 정도입니다. 그래서 학부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저의 발음 때문에 걱정이 되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부모님들의 소중한 자녀를 하루에 한 시간씩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저의 발음에 아이들이 익숙해질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아이들은 이제 미국 안에서의 삶보다는 인터넷 발달 등으로 인해 세계의 인재들과 소통하고 일해야 합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저로 인해서 아이들이 각 나라의 영어 발음 엑센트에 익숙해질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 따로 저에게 과외비를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유창하지 못한 저의 영어 발음 때문에 아이들이 득을 볼 일이 많을 겁니다.”

 

이쯤 되면 학부모들은 미소를 짓거나, 웃음을 터트리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을 보입니다. 영어 울렁증 극복이 큰 과제인 저는 ‘seeing is better than listening’을 모토로 학교 행사에 비디오를 많이 사용합니다. 1년간의 교육 과정, 학급 규칙 등을 나열하는 back to school night 대신 아이들의 생활을 담은 짧은 비디오를 제작하여 학부모나 지역 사회 리더들과 소통하였습니다. 저의 결핍을 메꾸고 가리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는데 생각보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영상을 보고 눈물 흘리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10분간의 짧은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후 제 손을 부여잡고 “내 아이의 선생님이 되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어떤 학부모는 “저의 이상적인 교실 상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거 같다”며 밝은 표정으로 저를 안아 주기도 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수업으로 극복
‘Kagan Structure’를 이용한 움직이고 토론하는 수업, Breakout edu 박스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과 문제 해결 능력 중심의 수업, bionimal theorem을 그저 책으로만 배우는 게 아니라 4d frame을 이용해 직접 pascal's triangle을 만들어 보는 수업 등에서 아이들은 살아 움직입니다.

 

이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한 학부모들이 한국형 발음을 하는 키 작은 한국 교사에 대한 우려를 떨치고, 오히려 강한 신뢰감을 안고 교실을 나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Back to school night을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 교장 선생님이 저를 불러 학부모가 남기고 간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십니다. 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학부모들을 만나기 전 받았던 스트레스를 슬그머니 버리고 학교를 나섰습니다. 교사라는 사실이 참 행복합니다.

최은희 미 조지아주 North Gwinnett 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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