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무서운 상상이 현실로

2017.12.01 09:00:00

정유정의 <종의 기원>을 활용한 수업

소설 밖으로 뛰쳐나온 악한

우리는 왜 ‘악’에 굴복하고 마는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통찰하고 있는 사회학 서적의 제목을 그대로 질문 삼아 글을 시작해본다. 정유정의 소설은 언제부터인가 책을 열기까지 두려움을 주기 시작했다. 유독 가독성이 높은 그녀의 소설은 한 번 페이지를 읽기 시작한 순간 폭주하는 서사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가쁜 호흡과 쉴 새 없이 진행되는 사건의 전개는 영화보다 오히려 큰 피로를 주었다. 무엇보다 작가의 소설이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악한’의 존재는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종의 기원’이라는 제목, 다윈의 진화론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 오버랩 되어서였는지 긴장을 풀고 첫 페이지를 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지없이 같은 패턴의 격한 호흡 속에 빠지고 말았다. ‘속았다’라는 생각도 잠시, 이전까지의 작품 속 악한들보다 더 악랄하고 종잡을 수 없는 주인공은 충격적이었다. 새벽녘 악몽에서 깨어나 발견한 참혹한 시신, 어머니임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그의 말과는 상관없이 사이코패스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이야기는 모두 변명으로 역겹게 들렸다. 기분 나쁜 독서 시 간이었음에도 ‘종의 기원’을 읽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늘 그랬듯이 찝찝한 기분으 로 독서의 기억을 갈무리해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믿기 어려운 뉴스를 접했다. ‘8살 여자아이를 납치하고 살인한 사건’, 게다가 엽기적으로 시신을 훼손했다는…


처음 뉴스를 보고는 해외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배경이나 잔혹한 내용이 ‘종의 기원’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이어지는 후속 뉴스를 몇 번이나 접하며 멍한 기분이었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듯한, 단단한 철장을 뚫고 탈출한 맹수를 직면한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엽기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을 수업의 장으로 가져올 생각은 책을 읽을 당시까지만 해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속에서 실재하는 이야기로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번쯤은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종 의 기원> 줄거리 살펴보기 

가족여행에서 사고로 아버지와 한 살 터울의 형을 잃은 후 정신과 의사인 이모가 처방해준 정체불명의 약을 매일 거르지 않고 먹기 시작한 유진은 주목 받는 수영선수로 활약하던 열여섯 살에 약을 끊고 경기에 출전했다가 그 대가로 경기 도중 첫 번째 발작을 일으키고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없이 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약과 늘 주눅들게 하는 어머니의 철저한 규칙, 그리 고 자신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듯한 기분 나쁜 이모의 감시 아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었던 유진은 가끔씩 약을 끊고 어머니 몰래 밤 외출을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왔다.

이번에도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며칠간 끊은 상태였고, 그래서 전날 밤 ‘개 병’이 도져 외출을 했었던 유진은 자리에 누워 곧 시작될 발작을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의 집에 양자로 들어와 형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해진의 전화를 받는다. 어젯밤부터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집에 별일 없는지 묻는 해진 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유진은 피투성이인 방 안과, 마찬가지로 피범벅이 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핏자국을 따라, 아파트 복층에 있는 자기 방에서 나와 계단을 지나 거실로 내려온 유진은 끔찍하게 살해된 어머니의 시신을 보게 되는데…

[은행나무 출판사 제공]


깊이 들춰보기

▶ 소설 속의 악한

나쁜 짓을 일삼는 ‘악한’을 소설 속에서 등장시킨 기원은 소설의 탄생과 같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순탄한 이야기가 아니어야 소설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 때문일까? 이야기 속에는 악한이 등장한다. 물론 신화와 성경의 시대에는 악마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현대 소설에서 연작 소설을 의미하는 피카레스크 소설의 원래 의미는 ‘악한 소설’로 여럿의 악당들 이야기가 이어지는 방식을 뜻한다. 선한 주동 인물의 승리와 고뇌를 돋보 이게 하는 상대적 역할의 악한이 아닌 주인공으로 격상된 새로운 변화였을 것이다. 종의 기원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잔혹한 살인마로 낯선 방식의 인물 선택이 아니다. 영화 속 에서도 이런 인물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인간 내면의 파괴적 성격(타나토스)

프로이트가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원 자아인 이드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리비도라 명명하고, 그 리비도의 절 반을 생의 욕구인 에로스, 죽음과 파괴의 욕망인 타나토스로 설명한 것은 인간의 보편적 문화에서 가장 터부시하는 영역을 표면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악한들이 활개 치는 소설 속 세상의 이야기들은 인간의 욕망을 간접적으로나마 해소시켜 주는, 마치 꿈과 같은 공 간의 역할을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

위의 두 이유는 어디까지나 소설 속에 갇혀 있을 때의 이야기다. 현실의 문제로 표출 되는 순간 우리는 엄청난 혼돈에 빠진다. 그런 이유에서 인천의 살인 사건이 불거졌을 때, ‘종의 기원’ 또한 마치 예언서가 된 듯, 이슈를 만들며 언론에 오르내렸다.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서 신기하다, 정말 저런 사람들이 있구나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조금 은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보다 근본적인 질문과 답을 찾아나갈 수 있어야 한다.


수업 속으로

잔인한 부분이 있어 저학년이나 모든 학생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 이다. 악한을 소재로 한 다른 작품을 찾아 각색하여 적용하도록 하며, 실제 사건을 연결 하여 우리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상기시켜준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심 리적 충격이나 파장을 고려하여 수위의 조절과 적절한 안내는 필수적이다.


토론으로 확장하기

흉포화가 심해지고 있는 범죄 양상과 함께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청소년범죄에 대 한 심각성과 이에 대한 처벌 강화에 대한 내용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쟁점

청소년범죄의 경우 미성숙한 자아라는 점과 계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형량을 상대적으로 낮게 잡아왔다. 하지만 최근 심각한 수준에 이른 청소년범죄에 대해 성인에 준하는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찬성

 반대

청소년이라고 해서 범죄 행위에 대해 면죄 받을수 없으며, 강력한 처벌을 통해 예방해 가야 한다.

건전한 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훈육과 교육을 병행해야 할 미성숙 자아이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에서 보호해야 한다.


이 쟁점은 현재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로 다양한 실제 사례와 의견 의 개진이 가능하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문제로 찬반형 토론을 익힐 수 있는 데 효과적이다. 대부분 검색 가능한 자료는 성인의 관점으로 쓰인 것인데, 당사자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의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 는지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논술문항지  


다음은 청소년범죄에 대한 상황이다.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맞게 논술하시오.


(가) 「청소년 기본법」에서 9세 이상 24세 이하인 사람을 ‘청소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형사상의 청소년은 그와 다 르게 규정하고 있다. 형사상의 청소년은 「소년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이때 ‘청소년’은 만 19세 미만의 자를 의미한 다. (「소년법」 제2조) 형사상의 청소년은 범죄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는 경우 또한 그러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따라서 청소년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 촉법 소년 : 죄를 범한 소년, 형벌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소년을 말한다. 이러한

촉법 소년을 형사상의 미성년자라고도 한다.

• 우범 소년 : 성격 또는 환경에 비추어 장래 형벌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만 10세 이상 만 19세 미만 의 소년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면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성벽이 있는 자, 정 당한 이유 없이 가출하는 자,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거나 유해환경에 접하는 성벽이 있는 자를 말한다.

• 범죄 소년 : 만 14세 이상 만 19세 미만의 소년으로서 형벌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자를 말한다.


(나) 촉법 소년과 우범 소년의 경우에는 형법상 만 14세 미만을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단, 「소년법」의 적용을 받아 보호 처분을 받게 할 수 있으며 피해자는 부모를 상대로 민사상의 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만 14세 이상 만 19세 미 만인 범죄 소년의 경우에는 형사책임능력자이므로 형사 처분을 받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범죄 소년의 경우에도 벌금 이 하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이거나 보호처분을 하게 할 수 있으며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이거나, 소년부에서 보 호사건으로 심리한 소년에 대하여 형사처분을 함이 타당하다고 인정하여 검사에 송치한 경우에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 하여 형벌을 과하되, 부정기형이나 사형·무기형의 완화 등 일반 성인과는 달리 특별 조치를 할 수 있다.

「소년법」 제49조, 제59조, 제60조


(다) 인천연수경찰서 조사 결과 김 양이 초등학생 B양을 살해 후 시체를 훼손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체의 일부를 SNS 를 통해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박 모 양(1998년생, 사건 당시 만 18세)에게 검은 봉투에 넣어 전해준 것으로 밝혀졌 다. 박 양은 혐의를 부인했으나 전격 구속되었다. 검찰은 김 양의 살인이 싸이코패스적 요인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있 다는 의견에 따라 김 양에 대해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그리고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 양이 정신과적 상담을 받 은 적은 있으나 자퇴 직전까지 약물을 복용하진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가해자 김 양은 공범 박 양과 트위터에서 역할 극 놀이를 했다고 한다. 주범 김 양이 검찰 구형 전 최후진술에서 자신은 심신미약 상태가 아님을 밝혔다. 검찰은 두 사람을 범행을 공모한 공모공동정범으로 보아 박 양에 무기징역을, 만 18세 미만인 김 양에게는 소년법과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사건 관련 자료 정리


● 논제 (가), (나)를 바탕으로 (다)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정리해보고, 청소년에 대한 처벌을 현재와 같이 해야 할지

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Tip 

앞서 이루어진 토론의 내용을 확인하고 정리해볼 수 있는 논제다. (다)와 같은 결정이 내려졌을 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공분했는데, 이러한 내용을 법적 차원에서 한계가 있음을 찾아보는 논제로, 자료 분석 능력을 키워줄 수 있다. (가)와 (나)를 통해 청소년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어떤 법률적 내용이 적용되는지를 찾아본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의 판결이 갖고 있는 타당성과 한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현행 법령의 유지와 개정으로 나뉘어 의 견이 제시될 수 있는데 각각의 내용에 타당한 근거가 제시될 수 있도록 첨삭지도한다.



박정현 인천 만수북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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