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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창가에서> 좋은 학교 따로 있을까

나그네 인생길, 교직생활 38년 동안 나는 여기저기 몇 개의 학교나 떠돌았을까. 대충 헤아려 보니 10여 곳쯤 되는 것 같다. 한 학교에서 장장 8년을 머물렀던 경우도 있었지만 평균 3,4년 정도씩을 머무르곤 했다. 그 중에 어떤 학교는 너무 마음에 들어, 억지로 쫓아내지만 않으면 몇 십 년이고 눌러앉아 머물고 싶었는가 하면, 부임한 지 1년 만에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던 학교도 있었다.

외형보다 중요한 내적 요인

어떻든 이 학교 저 학교를 구름처럼 떠돌다 이제 정년을 코앞에 앞두고 마지막 정거장에 서고 보니, 좋은 학교 나쁜 학교가 처음부터 정해져서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활동의 측면에서 교육자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크게 느낄 수 있었던 학교가 좋은 학교로 제일 먼저 떠오른다. 또한 인간적인 측면에서 동료교사들끼리 서로 배려하는 가운데 따뜻한 정을 주고받으며 도타운 인간관계를 맺었던 학교 또한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학교 주변 풍광의 수려함 정도나 교통의 편의성 같은 외적 조건보다는 근무하는 사람 스스로의 직장에 대한 소속감, 구성원 상호간의 동료애, 교육적 성취감 같은 내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함을 부인할 수 없다.

유행가 가사의 한 소절로도 잘 알려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전히 진리일 성싶다. ‘사랑도 미움도 다 제할 탓’이라는 말은 또 얼마나 인간사의 정곡을 찌르는 말인가. 가슴 설레던 첫 부임지, 고속버스와 완행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면서 서너 시간 흙먼지 날리는 길을 달려야 도착하는 외딴 마을 선착장. 거기서 다시 한참을 기다리다 하루 네 번 들고나는 나룻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섬마을로 떠나는 마지막 배에 오르노라면 귀양길 유배 떠나는 선비 마음이 이러겠다 싶었던 학교. 하나부터 열까지가 모두 고생이었음에도,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과 꾸밈없는 동심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르치는 일에 열중했던 일은 얼마나 보람찼으며,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은 또 얼마나 설레었던가.

흐르는 세월 앞에서 무심한 강산이 서너 번 바뀌다보니, 변하는 세태만큼이나 학교의 풍속도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학교들은 내 추억 속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예전의 학교가 아닌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 옛날의 순수함을 잃은 지 오래고, 함께 하는 교직원들의 직장에 대한 태도나 인간관계의 방식 또한 옛 사람들과 천양지차다. 아침 여덟시 반이면 우르르 들어왔다가 오후 네 시 반, 퇴근 때가 되면 무엇이 그리 바쁜지 각자의 차를 타고 스르르 교문을 빠져나가기에 바쁜 선생님들. 묻건대, 그들에게 학교는 과연 무엇일까. 내 사랑 뜨겁게 바치다 죽어가도 좋을 책임과 소명의 공간이기나 한 것일까.

하루 종일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이런 저런 격무에 시달리는 선생님들이기에, 퇴근이라도 제때에 해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거나 또는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내면의 충일을 꾀한다고 할 때 그걸 잘못됐다 탓하고 싶지는 없다. 충분한 휴식으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해서 아이들을 더 열심히 가르쳐준다는데 그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다만, 공사(公私)구분에서 지나치게 사(私)를 우선하고 자기위주의 처신을 앞세우는 개인주의 세태가 학교에까지 거세게 밀려오다보니, 학교 구성원 모두가 가족처럼 함께함으로써 거둘 수 있는 ‘참여와 협력 공동체로서의 교육 시너지’를 좀처럼 기대하기 힘들고, 그것이 결국 아이들에게 유형무형의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실천과 모범, 내 노력에 달렸다

성숙한 인격으로의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무엇보다 부모의 인성을 가장 많이 닮기 마련이지만, 배움의 과정 속에서 선생님들에게서 받는 인성적 영향 역시 지대하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르쳐나가야 할 인성교육의 주요 덕목 가운데 배려와 존중, 소통과 협동 등이 있는데, 이런 요소들을 실제와 동떨어진 말로만의 교육에 그치기보다 선생님들의 실천과 모범으로 보여준다면 훨씬 더 큰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류를 탓해서 무엇하리요마는, 아무리 교육환경이 낙후된 학교일지라도 ‘내가 잘하면 결국 좋은 학교’가 되고, 아무리 외양이 번듯한 학교일지라도 ‘내가 못하면 나쁜 학교’가 되고 마는 이치조차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가 메마르고 혼탁한 사회의 축소판이 될 수도 있지만, 선생님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인정과 배려의 웃음꽃 피는 행복의 산실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땅 곳곳에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에게 좋은 학교가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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