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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한반도의 아픔”을 가슴에 새기면서

65년 전 오늘 새벽 6.25 전쟁이 일어났다. 3년 동안 민족상잔의 아픔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은 숨가쁘게 달려왔다. 피땀 흘린 노력이 있었기에 원조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격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고속 성장은 멈추었고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은 여전하고 중국은 한국의 제조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에서 다시 돌아온 일본은 중국과의 대립구도 속에서 자신의 미래 행보를 가늠해 보고 있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은 한국이 점점 중국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며, 중국은 한국이 자신의 영향권 아래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를 둘러싼 한국, 미국, 중국 간의 갈등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정학적 구도의 풍랑은 한국을 휘감고 있고, 21세기 생존과 번영을 모색해야 하는 한국은 더이상 방황할 여유가 없다. 다시 세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래를 이어갈 후세들의 국가관은 그 정체성이 희미한 상태이기에 이에 대한 교육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교육현장은 이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 현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에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호국 안보 수업을 하고 학생들에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글쓰기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이에 3학년 2반 이승민 학생이 "한반도의 아픔을 가슴에 새기면서"라는 글을 썼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오늘은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6.25에 관한 이야기를 하여 주시고, 이어서 ‘호국보훈’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 영상자료는 1950년 우리나라에서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본에서 살고 계신 대학생들이 참전하여 겪은 전쟁체험으로, 재일교포 2세들로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신 분들의 참전 기록이었다. 이 할아버지들은 일본에서 자라고 한국말을 잘 하지 못했던 탓에 전쟁터에 나갔지만 의사소통에 많은 곤란함과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쟁에서 목숨을 다해 열심히 싸우셨다.

비록 일본에 나고 자라 한국을 거의 모르지만 그 몸 속에서는 아버지의 나라, 한국인의 피가 흘렀으며, 부모님들의 조국을 위해 누구보다 강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으로 열심히 싸우셨다. 그런 모습들을 보는 순간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나에게는 솔직하게 애국심이란 찾아보기도 힘들었고,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 이겨낼 수 있는 희생할 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 분들은 아버지의 조국을 구하기 위하여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애국심 때문에 일본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일본에서 나왔다. 그래서 전쟁이 끝났지만 부모님이 계신 고향 일본에 돌아갈 수가 없는 안타까운 신세가 된 것이다. 단지 애국심만으로 전쟁에서 온 힘과 마음을 다해 힘쓰셨을 모습을 다시금 상상해보니 저절로 내 눈가가 촉촉해짐을 느꼈다. 그 동안 나는 호국보훈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고 정확히 호국보훈이 무엇인지 단 한 번 찾아보지도 않았던 내 자신이 너무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

과연 나를 한국인이라고 스스로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호국보훈에 대해 많은 관심이 생긴 나는 집에 돌아와 호국보훈에 대해 알아보았다. 호국은 ‘나라를 수호 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보훈은 ‘공훈에 보답한다’ 라는 뜻으로 ‘나라를 수호한 공로에 보답하다’ 라는 뜻이 합쳐진 단어이다. 즉,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공이 있는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함으로써 그들의 공로에 보답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으며, 이러한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의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정부에서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했다고 한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38도선 전역에 걸쳐 남한을 침범함으로써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을 초래했다. 세계의 자유와 평화에 중대한 도전이였던 6.25 전쟁은 3년간 계속 되어 인명과 재산에 많은 손실을 입히고, 사상자도 엄청났다. 사상자는 약 150만 명에 달하였으며 모든 시설, 공장, 건물 들은 파괴되었다. 60년이 넘어 지금까지도 남한과 북한은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다.

많은 시간을 함께해 오고, 뜻을 이루어 일제로부터 광복을 이루었던 우리 민족이 서로 피를 흘리며 서로를 살해하는 일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그후 한반도에는 38도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어 피로 물든 경계선과 각자 남한과 북한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고 무사히 가족들을 볼 수 있는 것은 6.25당시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쳐 몸과 마음에 상처를 안고 희생하신 분들과 그들의 진정한 애국심 때문이었다. 이런 영웅들을 기리기 위한 날은 6월 6일 현충일이다.

그동안 나는 현충일을 쉬는 날, 학교 안가는 날이라고 생각하던 내가 참 한심스러웠다. 현충일이 무엇을 의미하는 날인 지도 모르고 태극기만 달고 빈둥빈둥 놀기만 했었던 나의 모습들이 머릿속에 겹겹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TV방송에서 봤던 이산가족 상봉 때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자니 나는 이제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슬픈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 정말 통일을 빨리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한 민족, 한 핏줄임에도 불구하고 왜 분단국가로 있어야 할까? 우리는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우리는 한 민족이지만 서로가 분단 된지 많은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은 남과 북이 서로 생활문화가 다르고 언어의 차이도 점점 커지면서 통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옛 조상들의 노력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되며 기필코 통일을 이루어야만 한다.

지금 우리 나라는 휴전 상태이고 언제 전쟁이 다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남한과 북한이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제3차 대전이 될 것 이다.” 라고.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나는 그때 당시 6.25 전쟁이 어땠을까를 상상해 본다. 많은 건물과 시설들이 폐허가 되고, 어제까지만 해도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서로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고, 쑥대밭이 되어있을 놀이터, 학교… 아픈 사람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마을 주민 사람들의 시체가 쌓여가며 아픔을 준비하지도 못한 채 허망해하며 죽어갔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가슴이 저려온다.

그때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에 숨죽였을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나 무섭고 끔찍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직감적으로는 알았지만,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며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두렵고 무거운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로하고 그분들을 기리기 위한 날. 6월 6일 현충일. 지금 우리는 이날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한낱 다른 공휴일과 같이 생각하지는 않는지.. 태극기는 제대로 게양하는지.. 또 진심을 담아 묵념은 하는지.. 이 날의 진정한 뜻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가오는 6월 25일을 맞이하면서 제2의 6.25를 막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도 대한민국사람인 만큼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선인들의 호국정신을 받들며, 그분들의 뜻을 지켜 더욱 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 할 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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