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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김명희 작 소설 <불멸의 꽃>을 읽고

사랑과 신뢰의 구도 소설 ‘불멸의 꽃’

1.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불멸의 꽃>은 시인이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한라일보 신춘문예에 2006년 ‘개성집’이 당선되어 등단한 김명희 시인이다. 나는 그의 시집 ‘빈곳’을 읽고 매료되어 72일간의 인도여행에 그의 시집을 가지고 가 틈틈이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녀의 시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섬세하고 독특한 묘사로 강한 공감을 자아낸다. 그의 시의 배경은 결코 높거나 화려하지 않다. 가장 낮고 후미진 곳의 진실과 아름다움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다양하게 펼0쳐진다. 그는 나에게 좋은 시인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준 시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화작가로 다시 부각되었다. 산림청 주체 동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이다. 그 동화 역시 산골마을의 정경을 다정다감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한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내다가 지난해 말 제 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참 대단한 열정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의 소설이 시중 서점에 깔리자마자 구입해 읽었다. 원래 정독을 하는 나의 독서 습관으로 그의 소설을 나는 토씨 하나, 맞춤법, 띄어쓰기 까지 살펴가며 닷새에 걸쳐 읽었다. 그 과정에서 몇 군데의 맞춤법 오류를 찾아내기도 했다. 상당히 지엽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출판사의 주의를 요하는 문제다.

2. 불멸의 꽃은 연애소설이다. 이 소설엔 남녀 간의 애정과 성의 문제가 이야기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묘덕과 백운화상스님과의 사랑, 묘덕과 세력가 정안군과의 결혼 과정, 왜군에게 묘덕 일행이 능욕당하는 장면이 모두 남녀 간의 성과 애정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성이 성속을 포함한 모든 인간사의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그 사랑은 아름답게 승화되어 직지라고 하는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다시 탄생되는 계기가 된다. 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영적 세계도 가장 숭고한 사상과 철학도 현실세계의 인간사로부터, 개인의 내적인 성정에서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3. 불멸의 꽃엔 인간대인간의 강한 신뢰와 유대가 핵심을 이룬다. 묘덕과 백운화상의 애정, 묘덕과 남편 정안군과의 부부윤리, 묘덕과 금비의 신분제도를 기반으로 한 신뢰와 상호존중, 활자장 최영감과 묘덕의 강한 책임감과 인간적 결속이 설득력 있는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되었다.

4. 이 소설의 지리적 배경을 살펴보면 전국을 그 무대로 하고 있지만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곳은 개경, 양평, 안성, 화성, 등지의 경기지방과 지리산과 남원, 서산이 등장하고 원나라와 명나라가 고려와 연결되어 언급되지만 핵심엔 청주 흥덕사와 무심천이 있다. 이런 배경 설정은 작가의 출신지와 무관하지 않다.

작가의 고향은 양평이지만 작가가 글공부를 하고 과일 행상이나 학교 방과 후 교사로 근무한 곳은 평택 안성 지방이다. 그 지방이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한 것도 우연만은 아닌 것이다. 안성 평택은 나의 고향이다. 그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나의 모교에서 방과 후 한문 교사로 근무했다는 양력을 보고 친밀감을 느껴 한번 만나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5. 이 소설의 장점은 탁월한 언어 감각이다. 주인공이 지리산이나 남원에 도토나 밀랍을 구하러 가서 그 지방의 민초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듣게 되는 전라도 사투리는 오랜만에 사투리의 진수를 맛본 즐거운 경험이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의태어 의성어가 적절하게 구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듣지 못한 실감나는 의성어가 작가의 창안으로 만들어져 신선한 언어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작가는 탁월한 시인이기도 하다. 한 편의 시에서 뽑아왔음직한 묘사를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소설의 문체는 비교적 단문으로, 숨이 가빠 허덕이거나 되풀이 하여 다시 읽어야 하는 수고로움 없이 자연스럽게 읽힌다. 단지 단문이기 때문이 자연스럽게 읽히는 게 아니라 문장을 능숙하게 다루는 작가의 역량이 빛을 발하기 때문에 그렇다. 주어, 동사, 형용사 등의 낱말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거나 꺼끌꺼끌하여 자주 막히게 되는데 불멸의 꽃의 문체는 전혀 막힘이 없이 자연스럽다.

6. 이 소설엔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다양한 불교 용어와 함께 전개되어 있어서 읽으며 자주 사전을 들춰야만 했다. 좀 더 정확하게 읽고 싶은 욕심으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낱말 하나까지 관심을 갖고 읽었다. 납 중독에 해독 작용이 있다는 아기장대라는 풀을 사전에서 찾으니 없었다. 작가는 계속 아기장대라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는데 사전에는 없고 결국 여러 번 인터넷을 검색한 후에 아기장대가 아니라 애기장대가 표준어라는 걸 알아내기도 했다.

7. 금속활자 제작과정의 절차와 방법에 대해 전문 용어를 동원하여 설명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독자들이 가장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 바로 이 금속활자 제조법에 대한 최 영감의 설명을 들을 때와 묘덕이 그 비법을 흥덕사에 새로 만들어진 주자소에서 인부들에게 설명하는 대목인데 마치 그것을 독자의 눈앞에서 직접 재현하듯 설명해 나가는 장면에서 작가의 역량이 발휘되고 있다..
백운선사의 입이 되어 사상과 철학을 설법하는 대목에서도 참고문헌을 전혀 인용하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장면에서도 작가의 탁월한 언어감각을 감지할 수 있었다.

8. 작가는 이제 40대 후반이다. 그의 살아온 인생행로를 보면 금세 강인한 의지와 놀랍도록 진취적인 삶의 자세가 엿보인다. 아버지의 병고와 가난, 어린 나이에 봉제공장에 취직해서 겪은 고초, 공부를 향한 집념을 놓지 못해 야학을 다니며 꿈을 키우던 노력,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봉고 트럭을 구해 길거리 행상으로 보내던 체험이 그의 시편에 낱낱이 녹아 있다. 그런 체험과 고난을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해 낸 것을 보면 그는 타고난 시인이며 작가다. 그런 몰입의 자세, 집념의 태도라면 앞으로 어떤 대작을 또 완성해 낼지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9. 이 소설을 읽는 재미중에 하나는 사건 전개의 속도감이다. 묘덕이 용광로 앞에서 쓰러져 화상을 입고 누워 있는 장면과 그를 살리기 위해 최 영감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과정에 이야기의 진척이 없어서 금방이라도 묘덕이 죽을 것 같아 초조감을 갖게 되지만 그것도 소설적 장치가 될 것이다.

의태어 의성어의 빈번한 사용과 원나라 병사들과 왜군들이 출몰하는 장면에서는 다소 환타지나 만화영화의 요소가 가미되었지만 그것이 작품의 분위기를 경쾌하게 이끄는 효과를 얻기도 한다. 작가가 이 소설을 오로지 직지문학상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하더라도 작가의 취향과 탁월한 문장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성취해낼 수 없는 작품이다. 나도 작가와 함께 고려시대를 함께 산 것 같은 느낌이었다.

10. 그의 시와 동화를 읽으며 그가 얼마나 다재다능한 재주의 소유자인지를 알았다. 앞으로 그가 어떤 장르의 소설을 또 내놓을지 예단할 수는 없다. 역사소설 작가로 자리를 굳힐지 다른 계통의 소설로 승부를 가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문체와 관찰력과 열정을 익히 아는 독자로서 어떤 장르의 글을 써도 잘 해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11. 그는 탁월한 시인이다. 나는 그의 시집을 접하고 그의 팬이 되었다. 그가 단 한 권의 시집을 내놓고 바로 동화작가로 다시 소설가로 장르를 바꿔 역작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신뢰감을 더해주지만 그의 제 2시집을 기대하는 한 독자로서는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
나는 박경리 선생의 시를 좋아한다. 앞으로 김명희 작가가 시인으로서든 소설가로서든 위대한 작가로 계속 진취적 행보를 이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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